추억의 스타 쌈장 이기석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급속하게 보급된 건 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거의 없었고, KT의 ISDN이나 모뎀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집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이전에는 사람들은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이라는 PC 통신을 주로 사용했었습니다.(왠지 PC통신 이라는 단어 자체도 굉장이 오래되고 빈티지 스러운 느낌이네요..ㅋ) 하지만 90년대 후반 초고속 케이블 인터넷이 보급됨과 동시에 대한민국에 PC 방 열풍을 몰고은 문제의 게임이 출시되었으니 바로 그 주인공은 스타크래프트 입니다.
저도 정말 밤새 스타크래프트를 한적이 셀수도 없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이후 회사에 들어와서도, 몇년간은 스타크래프트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되돌이켜 보면, 참 재미있는 추억인데요. 그 추억의 한켠에 아련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쌈장 이기석'입니다.
제가 이기석씨를 처음 알게 된건 바로 TV 광고를 통해서 입니다. 당시엔 너무나 파격적인 게임을 소재로한 TV CF!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 챔피언이라는 광고를 보고 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회사인 KT(당시 한국통신)이 이런 파격적인 CF를 했다는것도 참 놀랍니다.
▲ 쌈장 이기석
아무튼 문득 제 기억속에 떠오른 이기석이란 사람의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는데요. 현재는 학습지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90년대 스타크래프트의‘쌈장’… 이젠 ‘석쌤’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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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추락은 한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유명해진 뒤 잦은 홍보이벤트, 방송 출연 때문에 훈련에 소홀해졌고, 결국 게임에 지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최고 수준이었던 연봉(5000만원)은 ‘3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게임업계를 떠난 이씨는 “일본에선 전문대만 졸업해도 돈을 많이 번다”는 지인 말에 솔깃해 일본 유학을 떠났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위해 소프트웨어학과를 택했다.
“용돈을 벌려고 도쿄 신주쿠의 한 PC방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출전했어요. 16명을 상대로 연승을 거둬 상금 6만 엔(약 62만원)을 챙겼습니다. 내가 프로게이머였다는 사실을 PC방 주인이 나중에 알고 ‘한국 프로게이머 출입금지’란 팻말을 걸었지요.(웃음)”
2013년 귀국한 그는 대형병원·벤처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거푸 퇴짜를 맞았다. 공무원 시험도 2년 연속 낙방했다. 그는 마린·벌처(스타크래프트의 유닛명)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게임 금단 증상도 겪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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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로 일하던 이씨는 지난해 7월 유명 학습지 업체에 입사했다. 유학시절 닦은 일본어 실력이 도움이 됐다. 동료 직원과 학부모 가운데 그가 ‘쌈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게이머는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을 가진 일부 학부모 때문에 과거를 감추고 지냈다”고 말했다.
한 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1세대 프로게이머가 지금은 게임과는 전혀 상관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게 매우 안타까운데요.
뭐 그래도, 90년대 후반 그 당시 이기석씨의 인기와 존재감은 아직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겁니다. 그 기억은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여러 사람의 기억이 영원히 남을 것 입니다. ^^
90년대 추억의 스타 '쌈장 이기석' 지금 TV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이상 쌈장 이기석씨의 근황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P.S :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종료된 이후 TV에서는 스타 중계를 볼 순 없지만, 아프리카 TV를 통해서 선수들의 게임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프리카나 유튜브에서 '스타크래프트'를 검색해보시면 옛 향수를 느겨 보실 수 있을겁니다.